미증시 폭락 다음날 아침, 무엇을 해야 할까?

"폭락 다음 날 아침, 나는 호가창 앞에 있었다"가 들어간 어두운 배경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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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락 다음 날 아침, 나는 호가창 앞에 있었다


밤새 뒤척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시황 해설이 아니라 좋은 질문이다. ‘팔까, 버틸까’ 앞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의심해 봤다.


2026.11.02 월요일 · 읽는 시간 약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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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네 시, 눈이 먼저 떠졌다. 휴대폰을 집어 들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간밤에 미국 시장이 크게 무너졌다는 것을. 그렇다면 오늘 아침 한국 시장이 어떤 얼굴로 문을 열지도 불 보듯 뻔하다.


이런 날 머릿속은 시끄러운 증권사 객장이 된다. 팔자는 주문과 버티자는 주문이 동시에 올라온다. 내 머릿속 호가창을 그대로 옮겨 보았다.


매도 쪽 파란 막대 4줄(던지고 싶은 마음)과 매수 쪽 빨간 막대 4줄(붙잡고 싶은 마음)이 현재가 줄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도해


솔직히 말하면, 이 주문들 사이에서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손실 금액이 아니다. ‘진작 팔았으면’이라는 후회다. 이 후회는 아직 오지 않은 모레의 후회까지 미리 끌어다 쓴다. 여기에 가족에게 이 숫자를 어떻게 말할까 하는 걱정까지 얹힌다.


이 글은 매도 타이밍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럴 재주도 없다. 대신 호가창에 올라온 주문 몇 개를 의심해 보려 한다. 의심을 마치고 나니 결론은 ‘팔까 말까’와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의심 1 · 데이터]


▶ ‘시장은 반드시 회복했다’는 문장부터 의심한다


폭락장에서 나를 가장 많이 달래 준 문장이 있다. 시장은 늘 회복했다는 문장이다. 폭락 3개월 뒤, 6개월 뒤, 1년 뒤, 3년 뒤의 나스닥 그래프를 펼쳐 보면 실제로 그렇다. 위안이 된다.


그런데 ‘회복’의 기준은 무엇일까. 저점에서 얼마나 반등했는가와, 내가 샀던 고점을 되찾았는가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내 계좌가 묻는 쪽은 언제나 후자다. 그래서 대표적인 대형 하락 다섯 건을 ‘고점을 되찾기까지 걸린 시간’으로 다시 줄 세워 봤다.


닛케이 34.2년, 나스닥(2000) 15.1년, S&P500(2007) 5.5년, 나스닥(2021) 2.3년, S&P500(2020) 0.5년을 보여 주는 막대그래프


3년 그래프 안에 들어오는 사례는 다섯 중 둘이다. 2020년 코로나 폭락은 반년 만에, 2021~22년 나스닥 하락은 2년 남짓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반면 2007년 금융위기 때의 S&P500은 5년 반, 닷컴 버블 이후의 나스닥은 15년, 일본 닛케이는 34년이 걸렸다. 배당을 포함하면 기간은 이보다 짧아질 수 있고, 물가를 반영하면 더 길어진다.


더 불편한 의심이 하나 있다. 우리가 ‘반드시 회복했다’고 기억하는 시장은 대부분 살아남은 시장이라는 점이다. 20세기 전 세계 주식시장을 분석한 Jorion & Goetzmann(1999)은 미국 시장의 장기 성과가 다른 나라들을 대표하지 못하는 예외에 가깝다고 보고했다. 한국 투자자에게는 ‘박스피’라 불리던 긴 횡보의 시절도 낯설지 않다. 회복은 법칙이 아니라 결과였다.


그러니 위안의 문장을 이렇게 고쳐 쓰자. “시장은 대개 회복했다. 다만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약속하지 않았다.” 덜 달콤하지만 쓸모가 있다. 시간을 변수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의심 2 · 산수]


▶ 회복의 산수는 대칭이 아니다


1억 원을 넣었다가 6천만 원이 됐다고 가정해 보자. 손실은 40%다. 그런데 원금을 되찾는 데 필요한 수익률은 40%가 아니라 66.7%다. 6천만 원에 1.667을 곱해야 1억 원이 되기 때문이다.


손실 40%는 +66.7%, 50%는 +100%, 60%는 +150%, 80%는 +400%가 필요함을 보여 주는 곡선


손실이 1%포인트 늘어날 때마다 되찾아야 할 수익은 1%포인트보다 더 늘어난다. 직관은 이 비대칭을 늘 과소평가한다. 이것을 시간으로 바꾸면 더 선명해진다. 66.7%를 되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연 5% 10.5년, 7% 7.5년, 10% 5.4년, 15% 3.7년, 20% 2.8년을 보여 주는 막대그래프


연 7%로 굴러가는 계좌라면 7년 반, 연 10%여도 5년이 넘는다. 여기서 정작 위험한 것은 공포가 아니라 조급함이다. Thaler & Johnson(1990)은 손실을 본 사람이 본전을 찾을 기회가 보이면 평소라면 피했을 위험을 기꺼이 떠안는다는 ‘본전 효과(break-even effect)’를 실험으로 보였다. 폭락 뒤의 진짜 함정은 공포에 던지는 매도만이 아니다. 본전 욕심으로 키우는 베팅도 있다.


[의심 3 · 심리]


▶ 나는 확증편향이 아니라 ‘감정의 렌즈’에 빠져 있다


처음에는 이 상태를 확증편향이라 불렀다. 내가 생각한 것을 더 크게 부풀려 믿는 경향이라고. 엄밀히 따지면 조금 다르다. 확증편향은 내 생각을 지지하는 정보만 골라 보는 습성이다. 지금 나를 사로잡은 것은 오히려 느낌이 곧 판단이 되는 감정 휴리스틱(Slovic 외, 2002)에 가깝다. 불안하니 위험이 커 보이고, 위험이 커 보이니 더 불안해진다.


그 렌즈로 보면 과거도 왜곡된다. ‘진작 팔았으면’은 사후확신편향(Fischhoff, 1975)의 전형적인 문장이다. 결과를 알고 나면 그 결과가 처음부터 예고되어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어제 아침의 나는 오늘 밤의 뉴스를 몰랐다. 게다가 ‘진작 판다’는 말에는 숨은 절반이 있다. 팔고 나면 언제 다시 들어갈지를 또 결정해야 한다. 파는 일은 한 번의 결정이 아니라 두 번의 결정이다.


이 두 번째 결정이 어려운 까닭은 시장의 성격에 있다. Mandelbrot(1963)가 관찰했듯 큰 변동 뒤에는 방향과 상관없이 큰 변동이 따라오는 경향이 있다. 폭락이 모여 있는 곳에는 폭등도 모여 있다. 가장 나쁜 날과 가장 좋은 날이 이웃해 있다는 뜻이다. 무서워서 시장 밖으로 나온 사람이 다시 들어가기에 가장 무서운 시기가 바로 그때다.


[의심 4 · 선택]


▶ 전부 팔까, 반만 팔까, 오후까지 볼까


이제 호가창의 핵심 질문이다. 선택지를 ‘후회의 크기’로 비교해 보자. 의사결정론의 최소최대후회(minimax regret, Savage, 1951) 방식이다. 각 선택이, 결과를 알고 난 뒤의 최선과 비교해 얼마나 아쉬운지를 잰다. 6천만 원을 들고 있고, 다음 국면에서 10%가 더 빠지거나 10% 반등한다고 가정하자. 확률은 반반으로 놓았다. 예측이 아니라 계산 연습이다.


전량 매도 최악 600만, 절반 매도 최악 300만, 전량 보유 최악 600만을 비교한 표


전량 매도는 반등하면 600만 원어치 후회하고, 전량 보유는 추락하면 600만 원어치 후회한다. 절반 매도는 어느 쪽이 나와도 300만 원이다. 기대 손익은 세 선택이 똑같으니 반만 파는 일이 수익률을 높여 주는 것은 아니다. 대신 후회의 최악값을 절반으로 깎아 준다. Loomes & Sugden(1982)의 후회 이론이 말하듯 사람은 결과만이 아니라 ‘다르게 선택했을 때의 결과’와도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반반은 타협이 아니라 후회 예산을 짜는 일이다.


한 가지 더. 개장 전에 호가를 높여 낼지, 오후까지 지켜볼지 고민했다면 오래된 관찰 하나를 떠올릴 만하다. 하루 중 변동성이 장 초반과 마감 무렵에 크고 한낮에 잦아드는 U자 모양이라는 것이다(Wood·McInish·Ord, 1985). 개장 직후는 가격이 정해지는 중이라 가장 출렁이는 시간대다. 오후에 결정하는 편이 나은 이유는 정보가 늘어서가 아니라 소음이 줄어든 가격에서 되돌리기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오늘 아침 가장 불안한 내가 큰 주문을 넣어야 할 이유는 없다.


■ 이 계산이 통하지 않는 경우


신용, 미수, 주식담보대출을 쓰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담보비율이 무너지면 증권사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반대매매를 낼 수 있고, 그 주문은 가격을 가리지 않고 나갈 수 있다. 이때 ‘버티기’는 선택지가 아니다. 또 해외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같은 해에 실현한 이익과 손실을 합산해 세금을 계산하는 규정(양도소득세 손익통산)이 있으니, 매도를 고려할 때 최신 세법을 확인해 보길 바란다.


[반전 · 측정]


▶ 오늘의 가장 값진 수확은 매매가 아니라 ‘고통 지수’다


현금 비중을 올려 놓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하지만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평온한 날의 나는 “20%쯤 떨어져도 괜찮다”고 답한다. 위험 성향 설문지는 늘 차가운 내가 쓴다. Loewenstein(2005)은 이를 뜨거운 상태와 차가운 상태 사이의 공감 격차(hot-cold empathy gap)라 불렀다. 차가운 나는 뜨거운 내가 얼마나 괴로울지 상상하지 못한다.


그런데 오늘은 뜨거운 내가 처음으로 정직한 답을 내놓는 날이다. 계좌가 몇 퍼센트 빠진 지점에서 잠을 잃었는지가 내 진짜 위험 허용도다. 이 숫자는 어떤 진단 설문보다 비싸게 얻은 데이터다. 그렇다면 오늘 할 일은 매매가 아니라 측정값을 기록하는 일이다. 이렇게 한 줄이면 된다. “계좌가 −○○%일 때 잠을 못 잤다.”


이 값에서 목표 주식 비중이 거꾸로 나온다. 견딜 수 있는 계좌 낙폭을 상정한 폭락폭으로 나누면 된다. 나머지는 현금이고 현금 수익은 0이라고 단순화하면 이렇다.


견딜 수 있는 계좌 낙폭 10~40%와 주식 폭락폭 40~60%에 따른 주식 비중 17~100%를 담은 표


수익을 바라는 마음이 클수록 이 표를 정직하게 채우기 어렵다. 그래서 오늘이 기회다. 이번 하락에서 느낀 고통이 표의 첫 칸을 채워 준다. 현금 비중을 올려 놓지 못한 후회는, 이 칸을 한 번도 채워 본 적 없었다는 사실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


[질문 · 아침 점검]


▶ 오늘 아침 나에게 되묻는 여섯 가지


□ 이 돈은 언제 필요한가?

3년 안에 써야 할 돈이라면 회복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10년 뒤의 돈이라면 오늘의 시세는 소음에 가깝다.


□ 빌린 돈이 섞여 있는가?

신용, 미수, 담보대출이 있다면 앞서 한 ‘버티기’ 논의는 적용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담보비율이다.


□ 팔고 싶은 이유는 정보인가, 고통인가?

실적과 사업 전망이 바뀌었다면 정보다. 잠을 못 잤다는 이유라면 고통이다. 고통은 비중으로 풀고, 정보는 종목으로 푼다.


□ 지금 현금이 있다면 같은 종목을 같은 비중으로 살까?

사고 싶지 않다면 팔 이유가 이미 있다. 사고 싶다면 보유는 곧 매수 결정이다. 오늘부터 처음 투자한다는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 이 손실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가?

숨기는 손실은 혼자 내리는 결정으로 이어지기 쉽고, 혼자 내리는 결정은 감정에 가장 취약하다. 이것은 연구 결과가 아니라 필자의 견해다.


□ 내일 10%가 더 빠지면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적어 두자. 미리 정해 둔 행동이 없는 하락은 전부 공황이 된다.


[결론]


▶ 오늘의 가장 비싼 주문은 매도도 매수도 아니다


의심을 마치고 호가창으로 돌아와 보니 결론은 다소 엉뚱했다. 오늘 내가 내려야 할 결정은 ‘오늘 팔 것인가’가 아니었다. ‘다음 폭락 때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그 결정은 지금처럼 뜨거운 날에만 정직하게 쓸 수 있다.


“매도 버튼은 고통을 파는 버튼이고, 보유는 희망을 사는 일이다. 어느 쪽이든 오늘의 가격에는 감정이 붙어 있다.”


그러니 오늘 가장 값진 주문은 호가창에 올리는 숫자가 아니라, 다음번의 나에게 보내는 지정가 주문이다. “계좌가 −20%가 되면 이렇게 한다.” 한 줄이면 된다. 오늘이 훗날 승리의 교두보로 기억될지는 오늘의 수익률이 아니라 오늘 적어 둔 그 한 줄이 정한다.


나에게는 미국과 한국의 전문 투자가를 이길 꾀가 없다. 이길 필요도 없다. 내가 이겨야 할 상대는 1년 뒤 이 글을 다시 읽을 나, 그리고 그 나를 믿어 줄 수 있는 나다. 섣부른 대처는 접어 두고, 무뎌진 일상의 감각을 천천히 되살리자. 복잡한 타개책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자. 따뜻한 국물이 있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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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유의사항]


이 글은 필자 개인의 생각과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특정 종목이나 금융상품의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본문의 금액 사례(1억 원 → 6천만 원 등)와 후회 계산은 이해를 돕기 위한 가정이며, 시장 전망이 아닙니다.


지수의 날짜와 낙폭은 공개된 보도를 바탕으로 한 근사치이고 가격지수 기준입니다. 과거의 흐름이 미래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필자는 투자자문업자가 아니며, 세법과 규정은 바뀔 수 있습니다.


모든 투자 판단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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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 Jorion, P. & Goetzmann, W. (1999). Global Stock Markets in the Twentieth Century. Journal of Finance.

- Thaler, R. & Johnson, E. (1990). Gambling with the House Money and Trying to Break Even. Management Science.

- Slovic, P. et al. (2002). The Affect Heuristic. In Heuristics and Biases.

- Fischhoff, B. (1975). Hindsight ≠ Foresight. J. Experimental Psychology: Human Perception and Performance.

- Mandelbrot, B. (1963). The Variation of Certain Speculative Prices. Journal of Business.

- Savage, L. (1951). The Theory of Statistical Decision. JASA. · Loomes, G. & Sugden, R. (1982). Regret Theory. Economic Journal.

- Wood, R., McInish, T. & Ord, J. (1985). An Investigation of Transactions Data for NYSE Stocks. Journal of Finance.

- Loewenstein, G. (2005). Hot-Cold Empathy Gaps and Medical Decision Making. Health Psychology.


[시장 데이터 보도]

- Fortune · 나스닥, 닷컴 버블 고점 넘어 신고가 (2015) (https://fortune.com/2015/04/23/nasdaq-supasses-internet-bubble-peak-to-set-new-record)

- NPR · S&P500, 2007년 10월 고점 넘어 최고치 (2013) (https://www.npr.org/sections/thetwo-way/2013/03/28/175610809/1-569-s-p-closes-at-all-time-high-rising-above-oct-2007-mark)

- Axios · 나스닥, 2021년 이후 첫 신고가 (2024) (https://www.axios.com/2024/02/29/nasdaq-index-new-high)

- Dawn(로이터) · 닛케이, 1989년 버블기 기록 경신 (2024) (https://www.dawn.com/news/1816218/japans-nikkei-hits-all-time-high-breaks-1989-bubble-era-record)

- MacDailyNews · S&P500, 코로나 폭락 회복 완료 (2020) (https://macdailynews.com/2020/08/18/sp-500-hits-record-high-completing-recovery-from-covid-19-crash/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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